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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전집강해세트 성찬기전자성경찬양반주기

(새책/중고) (양장세트) 프란시스 쉐퍼전집 (전5권) - 표지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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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생명의말씀사
저자
프란시스쉐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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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두고 두고 간직하고픈 가치있는 책 !!!
프란시스 쉐퍼전집 총5권 !!! 최고의 기독교 지성 쉐퍼의 삶과 사상, 주옥 같은 저서들 !!!


금세기 최고의 기독교 지성 프란시스 쉐퍼는 복음주의 선교사, 철학가, 저자, 강연가로 공동체 라브리를 설립하여 이 시대 지성인들에게 바른 좌표를 심어 주었다. 그는 오늘날 사회 병리 현상의 주원인이 진리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사상에 있다고 보고, 방대한 저서를 통해 상대적 진리관이 사회 각 분야에 초래한 결과들을 기술하고, 우리 세계의 유일한 해결책은 성경적 절대 기준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라고 주장한다. 생명의말씀사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소개해 온 그의 저서들을 3년 여에 걸쳐 번역과 편집을 새롭게 하고, 아직 소개하지 못한 책들은 허가를 받아 새로 번역하고 전체적인 용어를 통일하여 전집으로 펴냈다.

 

 

 

 

 

본문펼쳐보기

얼마 전 나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20세기 사상의 일반적 견해에 지배받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신학생들에게 연설하였다. 연설을 마쳤을 때, 캐나다 출신의 한 대학원생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만일 우리가 선생님의 말을 바로 이해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복음 전도의 준비 단계가 복음 전도에 앞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면서 잘못을 범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이유는, 복음 전도의 준비 단계에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동감이라고 말했다.

진리는 회심에 앞선다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진리 개념을 충분히 분석했든 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진리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이 점을 깨닫고 있든 그렇지 않든, 어떤 진리 개념의 얼개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의 진리 개념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의 내용에 관심을 두기보다 진리가 무엇인지의 개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자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은 20세기의 사상 형식에 의하여 오염되었다. 기독교적 의미의 회심에 대하여 말하자면 진리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임”이라는 구절은 어떤 의미든지 포함할 수 있다. 우리는 기독교가 진리이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임”이 단지 어떤 “상층부의 도약”이 아니라고 말할 때 객관적인 진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면, 의도하던 것과 다른 말을 하
고 있는 것이 된다.

진리와 영성

우리가 복음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기 전에 객관적 진리라는 이 문제를 강조해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또한 참된 영성에 대하여 말할 수 있기 전에 객관적인 진리를 강조하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영성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성은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현대의 영성 개념과 구분되어야 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어떤 복음주의적 개념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영성은 순간순간 모든 생활 속의 전인과 관계 있으므로, 단편적인 것이 아니다. 이 참된 성경적 관점과 반대로, 어떤 복음 전도는 몸과 지성을 포함한 전인이 아닌 영혼에 지나치게 강조점을 두었다는 의미에서 플라톤주의적이다. 현대의 “영적 체험” 개념과는 반대로 성경적인 기반에 근거를 둔 경험은 진리에 견고히 의존함을 깨닫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이 경험은 단순히 감정적인 경험이 아니며, 내용 없는 경험도 아니다. 우리는 세 가지 부분으로 참된 영성을 생각할 수 있다. 참된 영성의 없어서는 안 될 출발점은 “거기 있는” 분 (혹은 것)을 그리고 어떻게 내가 그분(혹은 그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당신은 알지 못하는 무엇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분이 누구이며, 어떻게 나는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이해한 다음, 실제로 그와 같은 관계를 맺을 단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변화된 상태를 “거듭남”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와 같이 거듭나는 과정은 누구나 한 인간, 즉 개인으로서 밟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집단으로 거듭날 수 없고, 한 번에 한 개인으로서만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개인적인 문제라고 말한다고 하여 이것이 개인주의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두 말이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이 거듭남은 전체 사회적 문화적 개념을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참된 영성은 한편으로 진리를 추상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다른 한편으로 전인과 전체 문화에서 추상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참된 영성이라면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 성경은 진리가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세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타당성 있는 체계이다.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진리의 통일성에 대한 이 강조점이 함축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목해 보자. 무엇보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진리는 궁극적으로 정통주의와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정통주의는 중요한 것이며, 나는 확신 있는 정통주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리는 궁극적으로 정통주의와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로, 진리는 궁극적으로 신조와도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역사적 기독교의 신조들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신조들이 중요하지만 진리가 최종적으로 이 신조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진리가 최종적으로 이 신조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진리는 정통주의와 신조 배후에 있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셋째로 진리는 궁극적으로 성경과 관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점을 설명하겠다. 나는 초대 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의 본질에 대하여 가르친 것을 굳게 믿으며, 그들이 성경에 대하여 말해야 했던 점들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려 하지만, 진리는 성경 배후에 있는 무엇과 궁극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성경은 중요하지만, 성경이 어떤 방식으로 인쇄되어 있거나 어떤 가죽으로 장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며, 또 성경이 많은 사람을 도와 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들은 성경을 엄청나게 중요한 것으로 만드는 기본적 이유가 아니다. 성경과 역사적 신조와 정통주의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중요한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 점이 성경과 신조와 정통주의가 중요성을 갖는 유일한 이유이다.

- 거기 계시는 하나님: 진리의 중요성 중에서 -

우리는 신앙이라는 낱말을 분석해서 그것이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프스 산을 등반하다가 앙상한 암벽의 꼭대기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안개가 내리 덮혔다고 가정하자. 안내자가 우리를 향하여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이제 희망은 없다고 말한다. 아침이 되기 전에 우리는 이 산에서 동사하고 말 것이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안내자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분간할 수 없을 때 까지 우리들로 하여금 산등성이에 점점 짙게 내리깔리는 안개 속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였다. 한 두시간을 그렇게 한 후에 누군가가 안내자에게 “내가 안개 속에서 떨어져 열 자 밑에 있는 한 암반에 부딪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한다. 그 안내자는 아침까지 버티기만 할 수 있으면 그 때에는 살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행동을 뒷받침할 지식이나 이유도 전혀 없이 우리들 가운데 하나가 밧줄에 매달리어 안개 속으로 떨어진다. 이것은 일종의 신앙, 신앙의 도약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욱한 안개와 바위에는 얼음이 점점 두텁게 얼고 있는 그 산등성이 위에서 지쳐 있을 때, 우리는 “당신들은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당신들의 소리로 당신들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압니다. 나는 다른 암반 위에 있소. 나는 이 산에서 60년 이상이나 살아 왔으며 그래서 이 산의 기슭을 모두 다 알고 있소. 당신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10척 아래에 또 하나의 암반이 있다는 것을 내가 보증합니다. 만일 당신들이 줄을 타고 내려 오면 당신들은 밤새 그 일을 마칠 수 있소. 그러면 내가 아침에 당신들을 구하리다” 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가정하자. 나는 그 즉시 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그 사람이 알고 그런 말을 하는지, 그리고 그가 나의 적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질문들을 할 것이다.
알프스 산에서의 경우, 나는 그의 이름을 물을 것이다. 만일 그가 나에게 알려준 이름이 그 알프스 산에 사는 가족의 이름이라면, 그 이름은 나에게 커다란 작용을 할 것이다. 스위스의 알프스에는 그 지역에 사는 산악인임을 나타내는 특정한 가족명 이름들이 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비록 시간은 흘러가고 있을지라도, 나는 그에게 나에게 충분한 의문이 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물어볼 것이며 그래서 그의 답변에 내가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줄에 매어달려 낙하를 할 것이다. 이것은 신앙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은 첫째의 예와는 관계가 없는 신앙이다. 사실 만일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신앙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를 이와 같은 말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은 후기 키에르케고르파적 의미의 신앙의 도약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며, 그리고 나는 세부 사항뿐 아니라, 우주의 존재와 그 복합성 및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도 역시 충분한 질문을 하도록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한 질문을 하도록 초청받았으며, 그래서 나는 그가 나를 지으셨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형이상학적으로 믿고 경배하며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예비해 주신 대속적이며 화해적인 죽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부록2. “신앙” 대 신앙 -

 

 

 

 

 

 

 

 

각권 개요

1권 기독교 철학 및 문화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진리 개념을 충분히 분석했든 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진리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이 점을 깨닫고 있든 그렇지 않든, 어떤 진리 개념의 얼개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의 진리 개념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의 내용에 관심을 두기보다 진리가 무엇인
지의 개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자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은 20세기의 사상 형식에 의해 오염되었다. 기독교
적 의미의 회심에 대해 말하자면 진리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임”이라는 구절은 어떤 의미든지 포함할 수 있
다. 우리는 기독교가 진리이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임”이 단지 어떤 상층부의 도약이 아니라고 말할 때 객관적 진리에 대해 말하
고 있음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면, 의도하던 것과 다른 말을 하는 것이 된다.

2권 기독교 성경관
복음주의가 복음주의가 되려면 우리의 성경관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복음주의가 겉으로는 세력이 점차로 확산되는 듯하면서 핵심
부분인 성경에 대해 자꾸 너그러워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슬프게도 어떤 지역, 어떤 신학교, 복음주의라고 알려진 어떤 사람들
조차도 이제는 성경에 대한 입장을 견지하지 않는다. 문제의 쟁점은 분명하다. 즉 성경은 진리이며 성경은 역사와 우주를 다루는 부분
에서도 전부 무오한가, 아니면 종교적 주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만 계시적인가? 오늘날 세상과 마귀가 공격하는 부분은 성경에 대한 문
제다. 그러므로 확고한 성경관을 견지하는가 견지하지 않는가는 복음주의계의 분기점이다. 애정어린 마음으로, 하지만 단호하게, 온전
한 성경관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 한 복음주의는 철저하게 복음주의적일 수 없다고 말이다.

3권 기독교 영성관
그리스도인의 생활, 즉 진정한 영적 생활은 어떤 것이며 오늘 날 20세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가. 제일 먼저 지적해
야 할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시작하기조차 불가능하며, 진정한 영적 생활에 대해 다소라도 아는 것
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어떤 종류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또는 어떤
종류의 종교적 체험을 갈망함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임으로 되는 것이다. 복잡한 사고 구조를 가졌거
나 교육을 받았거나 또는 논리적인 사람이거나 단순한 사람이거나를 떠나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모두가 반드시 같은
길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동서고금 어디 있는 누구에게도 마찬가지며 예외가 없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독단적인 말씀을 하셨다. “나
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4권 기독교 교회관
우리가 진리를 가졌다고 할 때, 사람들은 과연 그 진리가 사람의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갈 뿐 아니라 현재에 매순간 모든 삶에 의의를 부
여하는가를 알기 위해 우리를 주시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인간이 인간을 인간처럼 대우하는 세상으로 정착시킬 그 무엇을 만들어 내기
를 기대하고 있다. 교회는 그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그들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다. 즉 먼저 우리
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며, 그 다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의 기초 위에 선 교회와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
의 형제들이다. 교회가 조직 체제에서 자유와 형식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지 않는 한, 또한 교회가 기독교 교의의 힘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와 진리를 가진 공동체를 만들지 못하는 한, 교회는 우리 세대에서 지탱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 세대에 충격력이 되지 못할 것
이다.

5권 기독교 사회관
다윈은 말년에 자신이 늙어가면서 두 가지 점에 대하여 점점 더 무뎌져 갔다고 그의 저술 속에서 여러 번 언급하였다. 첫째는 예술에서
찾는 즐거움이었고, 둘째는 자연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이었다.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다. 다윈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이 단지 비인
격적인 것과 시간과 우연의 결합으로 생겨났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말년에 와서 그것이 자신에게 그 반대 방향으로 효과를 미쳤다고 인
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다윈이 예술과 삶 일반에서, 그리고 자연의 영역에서 개인적으로 경험하였던 것과 동일한 즐거움의
상실을, 우리 역시 문명 전체에서 경험하게 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의기소침하게 하는
것은, 실제로 정통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비그리스도인들보다도 이런 문제에 대해 더욱 둔감하다는 사실이다. 자연에서 얻는 ‘기쁨’
의 죽음은 자연 그 자체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목 차

 전집1 기독교 철학 및 문화관
    제 1 권     거기 계시는 하나님
    제 2 권     이성에서의 도피
    제 3 권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제 4 권    다시 자유와 존엄으로

전집2 기독교 성경관
    제 1 권     창세기의 시공간성
    제 2 권     궁극적 모순은 없다
    제 3 권     여호수아서와 성경 역사의 흐름
    제 4 권     기초 성경 공부
    제 5 권    예술과 성경
    
전집3 기독교 영성관
    제 10 권    쉐퍼의 명설교
    제 11 권    진정한 영적 생활
    제 12 권    초영성주의에 맞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제 13 권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독교

전집4 기독교 교회관
    제 14 권     20세기 말의 교회
    제 15 권    오늘날의 교회의 사명
    제 16 권    그리스도인의 표지
    제 17 권    개혁과 부흥
    제 18 권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

전집5 기독교 사회관
    제 19 권    환경오몀과 인간의 죽음
    제 20 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제 21 권    낙태, 영아살해, 안락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제 22 권    기독교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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