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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전집강해세트 성찬기전자성경찬양반주기

(신간/베스트셀러책) 2024년 이달의 신앙서적 베스트 10 (Bes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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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민 목사 최신간]

“다시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되어라!”


세상 것을 열심히 구하고 있습니까?
-내가 반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따른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반그리스도인이란?
‘반(反)그리스도인’이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타 종교인이지만 기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비그리스도인이지 반그리스도인은 아니다. 비록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예수님께 호감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반(半)그리스도인, 즉 ‘하프(half)’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과연 누가 반그리스도인인가? 반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오해하게 하고, 심지어 교회를 외면하게 해서 사람들을 구원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알지만 그 뜻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그 뜻에 반하는 일만 일삼는 사람, 그가 바로 반그리스도인이다. 반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부인하지 못할 때 보이는 숱한 모습이고, 십자가 없는 영광을 바랄 때 보이는 정욕의 얼굴이다. 이러한 반그리스도인은 교회 밖보다는 교회 속에 훨씬 많다. 어쩌면 평생 그리스도 주변을 서성이지만, 그 중심은 언제나 세상을 향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저자는 이기적 그리스도인, 낙심한 그리스도인, 음란한 그리스도인, 섭섭한 그리스도인, 불만인 그리스도인, 불쌍한 그리스도인, 게으른 그리스도인 등 7가지 키워드로 반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진정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던 가룟 유다처럼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만 혹시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기 자신만을 위하고, 힘든 일을 만나면 늘 낙심하고, 음란하며, 주의 일을 하다 섭섭한 마음을 갖고, 매사에 불만이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고, 진리에 대해선 게으른가? 그렇다면 길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반그리스도인의 목록은 끝없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이다.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있다면 돌이켜 다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라고 이 책은 촉구한다. 누구에게나 반그리스도인과 같은 모습이 있다. 자기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하더라도 회개한다면 성화의 과정을 이끄시는 성령님이 꾸준히 빚어 가 주실 것이다. 이 책이 참그리스도인의 여정에서 눈에 띄는 표지판이 되길 바란다.

분명 그리스도인은 아닌데, 왜 굳이 교회에 다니는가? 교회는 어쩌다가 그런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었는가? 답은 분명합니다. ‘가치 있는 곳에 가짜들이 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자국에 무슨 간첩이 있겠습니까? 간첩은 적국에 보내는 법입니다. 많이 보낼수록 유리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교회의 본질을 허물어뜨리고자 하는 악한 의도를 지닌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래서 교회 안에 간첩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반(反)그리스도인입니다
p. 7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입으로 예수를 주라고 부르면서 믿음 없음을 드러내는 자입니까, 아니면 말없이 예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입니까?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리스도인입니까, 반그리스도인입니까? 예수님 당시 유대인 중에서 자신을 이방인과 동일시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유대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누구 앞에서 칭찬하셨습니까? 열두 제자들 앞입니다. 객관적으로 봅시다. 과연 누구의 믿음이 제대로 된 믿음이며 어떤 믿음이 큰 믿음입니까? 부모와 소유를 다 버리고 예수님을 택한 제자들보다 더 큰 믿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십니까?
p. 45

음란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방종을 자유로운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진정한 자유란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주장은 놀라운 사고의 전환입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이 가능할까요? 진리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 자만이 사고할 수 있는 프레임입니다.
p. 70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바울은 내 안에 더 이상 내가 없고 그리스도께서 계신 상태를 ‘믿음’으로 정의합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아닌 그리스도의 아바타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 102

매사 불만스럽고, 늘 불안합니까? 감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깊이가 믿음의 깊이이고, 감사의 깊이가 사랑의 깊이입니다. 만약 내 안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일생 한 번도 주님께 온전히 돌이켜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평생 그리스도 주변을 서성이지만, 그 중심은 언제나 세상을 향해 있는 반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p. 132

왜 불쌍한 세상보다 더 불쌍한 그리스도인이 생겨납니까? 그들이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 것들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조차 충분하게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들을 그토록 열심히 구하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세상 것들을 그토록 열심히 구합니까?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p. 161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진리의 삶을 사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눈을 떴습니다. “세월을 아끼라”의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하나님의 시간을 구해 내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로 부지런하게 살고자 한다면, 이 시대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내게 주어진 사명을 깨달아 세상의 시간을 하나님이 일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꿔야 합니다. 바울은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이 시대의 시간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합니다. 때가 악하다는 말은 시간이 악한 자에게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악한 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간을 구해 내는 것, 즉 되찾아 오는 것이야말로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사는 삶의 출발점입니다.
p. 179

1. 이기적 그리스도인
이기적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자기 자신의 생각과 이익의 기준에 따라 바라보고 해석하며 전파합니다.

2. 낙심한 그리스도인
세상 사람 모두가 낙심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은 낙심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낙심하는 법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3. 음란한 그리스도인
몸의 음란이야말로 우상 숭배와 같이 그리스도인과 반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기준입니다. 입으로 그리스도를 말하며 몸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반그리스도인 아닙니까?

4. 섭섭한 그리스도인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막 8:34) 따르라고 하신 명령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의 일을 감당하다가 섭섭 타령을 하는 일은 평생 없을 것입니다.

5. 불만인 그리스도인
매사 불만스럽고, 늘 불안합니까? 감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깊이가 믿음의 깊이이고, 사랑의 깊이입니다.

6. 불쌍한 그리스도인
불쌍한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것은 다만 이 세상 것들뿐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실상 반그리스도인입니다.

7. 게으른 그리스도인
게으른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위해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대체 그들은 무슨 일에 부지런을 떠느라 정작 진리에는 한없이 게으른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까?

조정민

25년 동안 언론인으로 열정을 불사르며 기독교를 비판하던 저자는 생명의 길인 예수님을 만난 후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꿈을 품고 목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많은 종교적 방황을 통해서 예수님이 진리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이 시대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통해 인생의 길을 잃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저자는 MBC 사회부ㆍ정치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뉴스데스크〉 앵커, 보도국 부국장, iMBC 대표이사, 온누리교회 목사, CGN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베이직교회 목사로 섬기고 있다. MBC <무한도전>, KBS <아침마당>, CBS <새롭게 하소서> 등에 출연했으며, 강단과 매체에서 복음과 신앙의 본질을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저서로 《Why Jesus 왜 예수인가?》, 《Why Pray 왜 기도하는가?》, 《사람이 선물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매일 기도》, 《사랑합니다》, 《조정민의 답답답》(이상 두란노) 등이 있다.

 

 




★ 미국 아마존 출간 즉시 160만 권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예수 그리스도는 왜 오셔서 죽으셔야 했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21세기에도 폭발력 강한 이슈다.

혹시 이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의 세계를 살고 있다.
이 사건은 역사적 실제이며
기독교 신자만이 아닌 현대인 모두와 매우 관련이 있다.

우리 각자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치명적인 문제에 대해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신학자 “존 파이퍼”가 정리하여 답한다!

■ 중요한 것은 원인이 아닌 목적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이유를 물으며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에 주목하기 쉽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하자면, 결국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는가? 여기서 우리는 원인이 아닌 목적을 묻고 있다.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은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인류를 위해 무엇을 성취하셨는가?”이다. 이 책은 구원의 문제에 관한 50가지 핵심을 신약성경에서 찾아 명료하게 정리했다. 이 질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50가지를 헤아리기 어렵다면, 이 책을 통해 당신에게 가장 중대한 질문을 충분히 직면하라.

■ 모든 이에게 널리 전파되어야 할 메시지
이 질문이 가지는 종교성 때문에 이 책이 기독교 신자만을 위한 내용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이는 그리스도를 모르거나 오해하는 사람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진리이다. 주변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할 가족과 친구, 지인이 있는가? 인생에 한 번은 듣고 도전을 받아야 할 메시지가 담긴 이 작은 책을 선물하는 것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시작하라.

■ 절기마다 반복하여 묵상해야 할 진리
이 책은 하루에 한 챕터씩 매일 묵상하기 좋은 분량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영혼을 사로잡을 만큼 깊고 강렬하다. 주기적으로 묵상해도 부족하지 않을 진리이다. 특별한 절기가 돌아올 때마다 십자가를 반복하여 묵상하는 기쁨과 중요성을 아는 독자에게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존 파이퍼의 정확하고 깊은 통찰을 통해 인간 마음의 근본적인 갈망을 만족시키고 우리 삶을 영원히 변화시키는 진정한 행복을 맛보라.

***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누구도 그리스도께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누구도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신 이유를 거부하지 않기를 구합니다.
영원한 것들에 눈을 감는 무관심의 안개가 걷히고
천국과 지옥의 실재가 분명해지기를 구합니다.
예수님이 역사의 중심이시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그분의 죽음을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보기를 구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바람이 수정처럼 맑게 부는
영원의 벼랑을 따라 걸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므로 자비로운 아버지,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자신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 보고
예수님의 죽음에서 아버지의 완전한 공급을 보게 해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아버지의 아들이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_본문 중에서


[일러두기]
■ 본서는 『더 패션 오브 지저스 크라이스트』(규장, 2004)를 새롭게 번역·출간한 것입니다.
■ 생명의말씀사 유튜브 채널에서 무료 오디오북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이렇게 활용하세요!
1. 하루에 한 챕터씩, 무료 오디오북을 들으며 본문을 읽어요.
2. 본문에 인용된 성경 구절들을 다시 묵상해요.
3. 묵상한 내용을 기록하거나 사람들과 나눠요.
4. 묵상한 내용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눠요.

▶ 추천합니다!
-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 십자가를 주변에 전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 십자가의 의미를 설교하거나 나누기 원하는 목회자 및 리더
- 성도들을 복음 전도자로 양육하기 원하는 교회 및 단체
-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모든 사람

언젠가 우리의 선행이 우리의 악행을 능가하리라는 생각은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행이라도 결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는 방식에서 하나님을 높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더없는 가치를 알릴 목적으로 기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선을 행합니까? …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선행이 우리의 악행을 능가하리라는 생각은 어리석습니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행위는 그 무엇도 아닌 반역만을 의미할 것입니다.
선행에 소망을 두는 게 어리석은 둘째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악행이 초래한 결과에서 구원을 받았다면, 이는 우리의 악행이 우리의 선행보다 가볍기 때문은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 곧 우리의 빚문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행위를 달아보는 방식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의 행위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만 소망이 있습니다.
기록된 선행과 악행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로지 기록을 폐기함으로써 받습니다. (결함 있는 우리의 선행을 비롯해) 우리의 악행에 관한 기록이 각각에 마땅한 공의로운 형벌과 함께 삭제되어야 합니다.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것을 성취하려고 고난받고 죽으셨습니다. _7. 우리를 향한 율법의 법적 요구를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의 정의, 곧 공의도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죄는 심각합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하나님을 모독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에 우리를 내버려두실 수 없습니다. 인간 판사가 범죄자들이 사회에 진 모든 빚을 탕감해 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영광에 입힌 손상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의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밝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범죄자들이 풀려나고 용서받으려면, 하나님을 모독한 자들이 풀려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유지된다는 극적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고난받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용서는 우리에게 아무 값도 물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순종은 모두 용서의 열매일 뿐 용서의 근거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를 은혜라 부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용서의 값은 그분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를 공의라 부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신다니 얼마나 귀한 소식입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심이 옳은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 때문입니다. 아,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신지요! _9.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우리는 현대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과학과 인터넷과 장기이식과 실시간 메시지와 휴대전화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근본 문제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정죄한다는 문제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을만큼 선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얼마나 뒤틀렸든 이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을 만큼 선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기 몸을 상하게 하거나, 자녀를 바치거나, 비영리단체에 수억 원을 기부하거나, 추수감사절에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하거나, 온갖 형태로 참회와 자해를 하더라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다시 말해, 얼룩이 그대로 남고 죽음은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양심은 더러워졌습니다. 시체를 만지거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처럼 외적인 것들로 더러워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하셨습니다(막 7:15-23). 우리를 더럽히는 것은 교만과 자기연민과 비통과 정욕과 시기와 질투와 탐심과 무관심과 두려움이고 이것들이 부추기는 행위입니다. 이들은 모두 “죽은 행실”입니다. 여기에는 영적 생명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죽음에서 비롯되며 죽음에 이릅니다. 이런 까닭에, 죽은 행실은 우리가 우리의 양심에 대해 절망하게 합니다.
여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해답은 단 하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우리의 양심이 일어나 우리를 정죄할 때 우리는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그리스도께로 향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곧 그리스도의 피를 향합니다. 온 우주에서 이것만이 양심에 안위를 주고 죽어서는 평화를 주는 정화제입니다. _16. 우리에게 깨끗한 양심을 주기 위해

누가 뭐래도 하나님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을 뜻합니다. 기독교는 무엇보다 신학이 아닌 소식입니다. 전쟁포로들이 숨겨둔 라디오에서 듣는 소식, 연합군이 상륙했고 구출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소식과 같습니다.
그런데 좋은 소식에서 궁극적으로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좋은 소식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복음의 모든 말은 하나님으로 연결되며, 그렇지 않다면 복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구원’이 단지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일 뿐 하나님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면,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의롭다 하심’이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법적으로 받으실 만하게 할 뿐 그분과 교제하게 하지 않는다면,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구속’이 단지 우리를 속박에서 해방할 뿐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지 않는다면,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입양’이 우리를 아버지의 가족이 되게 할 뿐 그분의 품에 안기게 하지 않는다면,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_22.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돕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무한히 가치 있는 분으로 보고 누리게 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유해한 즐거움에서 벗어나, 그분의 아름다움이 주는 즐거움에 사로잡히게 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랑을 받고 그분은 높임을 받으십니다. 이 둘은 서로 경쟁하는 목표가 아닙니다. 둘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야 성령님, 곧 보혜사를 보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요 16:7). 뒤이어 보혜사께서 오시면 무엇을 하실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요 16:14).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을 보고 높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도움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더없는 사랑의 기도는 이것입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즐거움, 곧 자신을 주기 위해 고난받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_32. 우리가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하기 위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누리는 것은 모두 그분의 죽음 덕분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죄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했던 모든 심판을 받았고, 용서받은 죄인들이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을 샀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자랑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만큼 그리스도 중심적이지 못하고 십자가를 소중히 여기지도 않습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이 좋게 바꾸시는 모든 나쁜 것을 포함해) 그리스도의 고난이 샀다는 진리를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십자가에 철저히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죽었다는 진리를 깨우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갈 6:14).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십자가를 자랑하는 비결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세상의 강력한 매력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죽었고 세상은 우리에 대해 죽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갈 6:15, new creation,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 곧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를 세상 모든 것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우리의 사랑을 빼앗으려는 세상의 능력은 죽었습니다.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합법한 즐거움이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 피로 산 증거가 되고 십자가를 자랑할 기회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복의 줄기를 따라 그 근원인 십자가로 돌아갈 때, 세상의 복은 죽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전부가 되십니다. _33. 십자가가 우리의 모든 자랑의 근거가 되게 하기 위해

의롭다 하심이 본받음에 선행하며 본받음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도록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다가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 고난받는다고 하나님의 진노가 제거되지는 않지만, 이러한 우리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제거된 것이 얼마나 귀한지 보여줍니다. 우리의 고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향하게 합니다.
바울은 “내가 택함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딤후 2:10).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을 향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고난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되 그분을 대신하지 마십시오. _37. 우리가 그분의 겸손과 값진 사랑을 본받게 하기 위해

예수님은 모든 민족과 인종이 화해하는 전혀 새로운 길을 열려고 죽으셨습니다. 의식과 민족과 인종은 기쁨으로 함께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나누는 율법의 모든 요소가 그리스도 안에서 끝났습니다. 하나만 빼고 말입니다. 그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교가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인종과 민족들 사이에 지속적인 일치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고 인종과 민족들을 영원히 화해시키는 유일한 수단으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를 부정한다면 영원한 소망뿐 아니라 인종과 민족들 간의 영원한 일치를 위한 기초 자체를 허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지역을 뛰어넘는 하나의 세계가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오직 이것을 발견하고 기뻐할 때 서로를 영원히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 안에서 인종과 민족들 사이의 멀어짐을 극복하셨습니다. _44. 인종·민족 간의 적대감을 허물기 위해

들어가며_그리스도와 집단수용소

1.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 위해
2.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3. 순종을 배워 온전하게 되기 위해
4.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기 위해
5.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기 위해
6.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7. 우리를 향한 율법의 법적 요구를 제거하기 위해
8.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기 위해
9.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10.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을 기초를 놓기 위해
11. 우리의 의가 될 완전한 순종을 이루기 위해
12. 우리가 정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13. 구원의 기초로서 할례를 비롯한 모든 의식을 폐지하기 위해
14. 우리가 믿고 그 믿음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15.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완전하게 하기 위해
16. 우리에게 깨끗한 양심을 주기 위해
17. 우리에게 좋은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획득하기 위해
18. 우리의 도덕적·육체적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19. 그분을 믿는 모두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20.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내기 위해
21.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
22.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
23. 우리가 그분의 소유가 되게 하기 위해
24. 우리가 담대하게 성소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25. 우리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게 하기 위해
26. 구약의 제사장직을 폐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
27. 공감하고 돕는 제사장이 되기 위해
28. 우리를 조상의 헛된 행실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29.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30.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기 위해
31. 우리가 율법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32. 우리가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하기 위해
33. 십자가가 우리의 모든 자랑의 근거가 되게 하기 위해
34. 우리가 그분을 믿음으로써 살게 하기 위해
35. 결혼에 더없이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36.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백성을 일으키기 위해
37. 우리가 그분의 겸손과 값진 사랑을 본받게 하기 위해
38.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일으키기 위해
39.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40. 우리가 죽자마자 그분과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해
41. 우리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42.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43.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되도록 하기 위해
44. 인종·민족 간의 적대감을 허물기 위해
45.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 가운데서 사람들을 속량하기 위해
46. 온 세상에서 그분의 양을 모두 불러 모으기 위해
47. 우리를 마지막 심판에서 구해내기 위해
48. 그분의 기쁨과 우리의 기쁨을 얻기 위해
49.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기 위해
50. 하나님이 가장 악한 것이라도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도
성경의 역사적 신빙성을 다룬 책

존 파이퍼

존 파이퍼(John Piper)
“기독교 희락주의자”, “탁월한 기쁨의 신학자”. 미국 처치리포트가 발표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 사람인 존 파이퍼는 대학 시절, 기쁨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지금까지 “여호와를 기뻐하라”(시 37:4)는 명령을 따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전하고 있다.
휘튼 칼리지(Wheaton College)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 학사 학위를, 뮌헨 대학(University of Munich)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들레헴 침례교회(Bethlehem Baptist Church)에서 33년간 담임목사로 섬겼으며, 베들레헴 신학대학(Bethlehem College & Seminary)의 총장으로 섬기고 있다. desiringGod 미니스트리즈를 설립해 모든 설교와 기사를 온라인으로 무료로 제공, 전 세계 그리스도인에게 바른 신앙과 기독교적 세계관을 전수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고전으로 평가받는 대표작 『하나님을 기뻐하라』, ECPA 금메달 수상작인 『예수님의 지상 명령』과 『삶을 허비하지 말라』, 『존 파이퍼의 돈, 섹스 그리고 권력』, 『존 파이퍼가 결혼을 앞둔 당신에게』, 『내가 바울을 사랑하는 30가지 이유』, 『시편을 마음에 채우다』, 『섭리』, 『존 파이퍼의 구원하는 믿음』(이상 생명의말씀사) 등이 있다.

 

 




“존 파이퍼의 삶과 설교를 충실히 담은,
설교자라면 놓칠 수 없는 책!”


탁월한 강해 설교자
존 파이퍼를 주목하라!
그의 삶과 설교는 오늘날 설교자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가?


[출판사 서평]

영적 준비부터 선포까지 한 권으로 정리한
존 파이퍼 설교 연구 길잡이!


존 파이퍼에게 배우는,
설교자에게 꼭 필요한 영적 준비와 성경 연구
설교 철학과 정의, 그리고 어떻게 설교를 조직하는가?

국내 신학대학교 교수들과 설교자들의 강력 추천!
굳건한 신학적 기초와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오직 성경으로 다시 강단에 서라!

이전, 당신은 어떤 설교자인가?
설교는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주신 가장 우선적인 특권이며 무거운 책임이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설교자를 사용하신다. 당신의 설교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혹시 세속화된 설교자들처럼 성경적 설교를 멀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 권으로 배우는 존 파이퍼의 설교 준비와 선포
존 파이퍼는 강해 설교를 위한 굳건한 신학적 기초와 불타는 열정, 실제적인 방법을 가진 목회자이다. 따라서 존 파이퍼의 삶과 설교를 분석하여 설교자는 어떻게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존 파이퍼의 설교 연구 입문서로 존 파이퍼의 삶과 사상, 성경 연구 방법과 설교 철학, 설교를 조직하는 방식, 그리고 그의 설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다루었다.

이후, 이제 당신은 어떤 설교자가 될 것인가?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존 파이퍼의 삶과 설교를 배우고, 또한 그의 설교를 찾아 읽으며 굳건한 설교자로 바로 서도록 인도하고자 한다. 존 파이퍼의 설교는 세속화된 설교자들과 거룩한 사랑 없이 딱딱한 신학적 교리만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경고할 것이다. 또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기를 원하는 설교자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뜨거운 열정을 선사하고 성경적 설교의 실제적인 원칙과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설교자로서 자기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목회자와 신학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존 파이퍼의 삶과 설교에 대한 연구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훈련하고 또 훈련하라. 반드시 당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이 책을 읽고 활용하는 법]
※ QR코드 참고 자료 제공
-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은 후, 자신의 설교를 돌아보고 적용한다.
- 훈련하고 또 훈련하며 자기 목소리로 설교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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